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시간을 멈추게 하기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공휴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어디 갈 데도 없을 때, 시간은 마냥 늘어진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이미 해가 뉘엿거리는저녁.
후회가 쓰나미가 되어 밀려온다.

아, 난 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 소중한 인생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버린 것인가.

1. 닌텐도 DS 하기
두뇌 어쩌구 하는 게임은 흥미가 없다.
내 두뇌를 더 계발해서 뭘 어쩌겠나.
'파이널 판타지', '젤다'가 취향이다.
난 '마리오'도 못하겠다.
한 시간쯤은 어렵지 않게 간다.
목이 뻣뻣해지면 한 시간 간 것이다.

2. 방 청소하기
아침의 진공청소는 밤새 떠들고 아침에야 잠을 자는 옆집 사람들에 대한 상쾌한 복수다.
그런데 내 작은 방 청소하는 데는 15분도 채 안 걸린다.
또 뭐로 쟤들을 깨우나...

3. 요리하기
멸치, 양파, 감자, 두부, 마늘만 있으면 된장찌개를 만들 수 있다.
재료 썰어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의 인스턴트 식품 수준이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닌텐도 DS.
한 번 만들어 놓고 빵을 찍어 먹으면 퐁듀가 부럽지 않고,
국수와 비비면 스파게티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4. 잠자기
이도 저도 귀찮으면 잠을 잔다.
하지만, 어둑해진 방에서 다시 눈을 뜨는 것처럼 허무한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때 밥이 없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엊그제 만든 된장찌개는 점심으로 다 먹어버린걸 기억해냈을 때 ...
아, 삶은 이렇게도 단순한 것이다.

5. 블로그질하기
이거 정말 괜히 시작했다.
닌텐도 DS는 레벨이라도 올라가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다.
왜 하는지에 대한자괴감에 휩싸인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가 보다. 나나 당신이나.

6. 시간을 멈추게 하기
이 모든 삶의 가벼움이 머리를 어지럽힐 때,
USB 메모리에 겹겹이 숨김 파일로 고이 간직한 김아중사진들을 본다.
그 큰 눈망울이 내 눈 속에 가득 차오르면
주위 사물이 사라지고, 컴퓨터 화면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침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초침이 정지하는,
시간이 우주의 암연 속으로 사라지고,
존재가 영원과 조우하는 그 순간이 꿈결처럼 찾아온다.

...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