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원소가 하나뿐인 집합



수학에서 집합이란 그 대상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의모임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집합이 될 수 없다.

아름다움의 정의에 대한 범 인류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든 상대방이 아름다운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지 그 이름들을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집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누구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정답은 없다. 개성만 존재한다.


나는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무한 집합을 품고 지냈다.

사실 그게 집합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난 그저 그 단어를 빌리고 싶을 뿐이다.


어렸을 때 TV나 영화관에서 본 수많은 국내외 여배우들.

모두 내 머릿속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합'의 원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이 생각나는가 하면 얼굴만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또시간이 흐르면서 원소의 개수는 점점 늘어갔다.


혹시 내가 여기서 무슨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기를 바랐는가?

미안하지만 난 그럴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다.


난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혼자 방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던, 시간이 무한정 지속될 것 같던 늦 여름 오후.

2007년 9월, '미녀는 괴로워'를 인터넷으로 두 번째 보고야만 날.

내 '아름다운 사람들' 집합을 구성하고 있던 그 수많은 이름이 '김아중'이라는 이름 앞에

툼레이더를 가로막던 허접한 악당들 마냥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그날 이후 수많은 여배우가 '한 때 내가 좋아하던'이라는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게 되었고,

내 가슴 속에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합'에는 단 하나의 원소만 남게 되었다.


'김 아 중'.


앞으로 오랫동안 원소의 개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아마 이럴지 모르겠다.

"놀고 있네."

그래, 난 놀고 있다.

당신의 시간을 훔치며 놀고 있다.

심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