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김아중 중독자의 하루

오늘 아침에도 마리아 알람 소리로 잠을 깬다.

욕실로 가면 나를 반기는 것은 팬틴 샴푸. 

샴푸 할 땐 서서 한 손으로 벽을 짚어 본다. 
옷은 다 젖지만 왠지 멋있다. 
얼굴까지 그냥 샴푸로 씻는다.
치약은 아직 마땅한 것이 없어서 양치질은 웬만하면 거른다.

날이 추워지니까 피부가 건조해짐을 느낀다. 

오휘를 사야 할까 보다.

아침은 어제저녁 먹다 남은 피자에땅 피자 한 조각.


차에 시동을 걸고 보니 기름이 아슬아슬하다. 

회사 가는 방향 반대쪽에 있는 s-oil을 넣어준다.
그래서일까 50만 원짜리 내 중고차 잘 나간다.

지난여름 거금을 들여 앞바퀴 두 개를 한국 타이어로 바꿔 달고부터는 

비가 와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난 비 오는 밤이면 빗 속을 마구 달리고 싶지만 좀 무섭다. 
와이퍼가 작동 불량이기 때문이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단 뉴스 검색. 

오늘 새로운 사진이나 뉴스가 없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새로운 사진은 없다.

이런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연해야 하지만 불안하다. 

입맛이 없어서 점심도 대강 회사 식당에서 때웠다.

그래도 후식은 챙겨 먹는다. 쵸코퍼지. 
단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후에 오랜만에 고교 동창 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 녀석 밀항의 전도현 팬이란다.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렸다.
난 오늘 내 친구를 버렸다.


퇴근 후에 집에 오니 저녁은 아침에도 먹은 피자에땅 피자. 

심하게 말라있다.두 판을 하루에 다 먹기는 역시 무리다.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또 인터넷 서핑을 하는 

나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 발자국이라도 밟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스케줄을 검색 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저항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아버지께서 고스톱을 하시려고 내 방에 들어오신다.

나는 고스톱은 12인치 화면으로 하시지 그러냐며 
5년 된 내 노트북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고스톱도 데스크톱 24인치지 무슨 소리냐며, 
너도 한때는 24인치로 하지 않았느냐며 우기신다.
나는 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따라 들어오신 어머니께 이끌려 노트북을 안고 
안방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아버지.
난 아버지도 버렸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회사에서부터 계속 된 과도한 인터넷 검색 탓에 어깨도 결린다.

난 결국 인터넷 서핑 그만 하고 한 잔 하러 

근처 술집을 향해 집을 나섰다.
도대체 '대한민국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눈이나 있는 것이냐며,
한국 영화계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며 혼자 개탄하면서 
김치 한 접시를 안주 삼아 참이슬을 마셨다.
어디선가 '러브 샷?'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옆 자리를 치우던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김칫국물을 조금 흘렸다.

미안하다며 얼른 휴지를 들고 닦아 주기에 
김칫국물을 쏟아 놓고 휴지로 되겠느냐며 뿌리치고 얼른 뛰쳐나왔다.
돈은 주고 가라는 다급한 아주머니의 말은 무시했다. 
망설임이란 내게 없다.
난 술값 2,000원을 벌기 위해 나도 버렸다. 
하지만, 이익은 영원하다.

깡 술을 마신 탓인가?

무작정 뛰다 보니 내가 진짜 어디에 와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하나도. 
내 집이 보고 싶다.

급하게 술집에서 뛰어나오다 탁자에 부딪힌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아파 온다.
걷기 힘들만큼 힘에 겹다. 
눈물이 앞을 가려 온다.
하지만, 그때 꿈을 꾸듯 다가오는 유난히도 밝은, 
어두운 집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계신 아버지의 담뱃불.

다 털렸다는 한마디를 하시고는 

아버지께서 나를 씁쓸히 올려다보신다.
난 아버지 추운데 이게 뭐예요, 속 옷 다 보이잖아요라며 
옷깃을 여며드리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몰려와 
아버지를 와락 안아 드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간 내게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너 왜 우니?

내 방에 누우니 바람결이 창을 흔든다.

창으로 들어오는 별빛들이 발가락 많이 아파하지 말라며 
잘 자라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내일 아침도 마리아가 날 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