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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김아중은 예쁘다.
나는 가끔 세상을 향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김아중은 예쁘다."
왜? 할 일 없을 땐 그냥그러고 싶은 거다.
노골적으로, 뻔뻔하게.
당신도 나처럼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 나와
TV도 라디오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어 보시라.
절로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장미를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붉은색이 아름답다거나,
꽃잎의 휘어진 모양새가 절묘하다고 분석하기 시작하면
이미 장미의 아름다움을자신에게 강요하고 최면 거는 것이다.
장미를 아름답게 보는 옳은 방법이 절대 될 수 없다.
장미는 그냥 아름답다.
거기에 이유를 붙일 수 없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분석해줘야 이해되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모를 것이다.
"김아중은 아릅답다."
거기 그렇게 있는 것 자체로, 온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예쁘다.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서 있어도 예쁘다.
앉아있어도 예쁘다.
누워있어도 예쁘다.
자고 있어도 예쁘다.
김아중은 거기에 그렇게 있다.
그저 피어있을 뿐이다.
더 무엇이 필요하랴.
"김아중은 예쁘다."
난 이런 말을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다행이면서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답답증이 생긴다.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땅을 파고 소리치고 싶다.
"김아중은~~ 예쁘다~~."
언젠가 갈대밭에 가거나, 대나무 숲을 지날 때,
또는 산비탈 단풍나무 밑을 홀로 걸어갈 때 귀 기울여 들어보시라.
그때 아마 나뭇잎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온 세상이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소리를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아중은~~ 예쁘다~~."
김아중씨를 생각나게 하는 고사성어들
고사성어 중에서 김아중 씨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띄는군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도 있고 그냥 막연히 저 혼자만의 느낌으로 연상되는 것도 있습니다.
1. 해어화(解語花)
경국지색, 절대가인, 월태화용(月態花容), 등 미인을 나타내는 말들은 몇 가지 들어봤지만
이것은 최근에 처음 본 단어이면서도 시적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현종이 자신의 애첩인 양귀비를 지칭해서
한 말이랍니다. 당시에 TV가 있어서 까만콩차 CF라도 봤다면 현종이 양귀비를 보고
이런 말을 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성을 다소 비하하는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 말을 듣고 김아중 씨가 연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2. 월명성희(月明星稀)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해진다.’라는 뜻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위 사람들의 존재가 약해진다는 의미랍니다.
김아중 씨 때문에 다른 모든 여배우들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을 정확히 형용한 말이지요.
근래에 주워들은 고사성어 중에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3. 천의무봉(天衣無縫)
‘하늘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라는 뜻이라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고 합니다.
옛날에 ‘곽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천상의 직녀가 찾아와 같이 지내기를
요구하더랍니다. 경사난 것이죠. 한 일 년 같이 살다가 직녀는 상제가 정한 기한이 끝났다며
하늘로 돌아갔는데 그 직녀가 입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었답니다.
곽한은 직녀를 잊지 못해 그 이후에는 세상 어느 여자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자식을 얻으려고 장가를 들기는 했지만 자식도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쳤다는
결말이 슬픈 얘기입니다. 김아중 씨의 옷은 틀림없이 바느질 자국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기도 하고 김아중 씨 때문에 ‘곽한’ 같은 사람 여럿 나올 것 같다는
우려도 들게 하는 고사성어입니다.
4. 아향(阿香)
진나라 사람으로 ‘주’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먼 길을 가다 날이 저물 무렵
어떤 외딴 집을 지나게 되었답니다. 그 집 앞에 웬 여자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주’를 보고는 앞마을이 멀고 날도 저무는데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주’는 하루 묵기를 청했다지요. 여자가 불을 피우고 음식도 준비했는데,
밤 여덟 시가 되자 밖에서 어린아이가 ‘아향’하고 부르더니, 관리가 뇌거(雷車)를 밀라고
당신을 불러오랬다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여인은 인사를 하고 나갔고,
밤이 깊자 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렸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주’가
말에 올라 밤에 묵었던 곳을 뒤돌아 보니 새로 만든 무덤이 하나 눈에 띄었을 뿐이라는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에서 유래한 말이랍니다.
즉 ‘아향’은 뇌신(雷神)을 가리키는 이름이랍니다.
이야기가 진부하기는 하지만 새로 생긴 무덤이라는 대목이 애틋하면서도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또 ‘아향’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예쁘면서도
‘아중’과 비슷하고, 뇌신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의 아련함 때문에
김아중 씨가 연상되는 단어입니다.
5.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이라는 의미이며, 볼 수만 있고 가질 수는 없는 것을 뜻한답니다.
이 고사성어에서 제가 김아중 씨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모두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향’과 더불어 뜻을 음미하고 있으면, 이곳에 들어오는 일이 왠지 허망해지는 고사성어입니다.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중독자의 서시
중독자의 서시
죽는 날까지 화면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김아중의 눈물 한 방울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김아중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김아중이 뇌리에 스치운다.
김아중 중독자의 대사 외우는 밤
김아중 중독자의 대사 외우는 밤
자정이 지나가는 컴퓨터 화면은
‘미녀는 괴로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영화 속의 대사들을 다 외울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대사를
이제 다 못 외우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대사 하나에 추억과
대사 하나에 사랑과
대사 하나에 쓸쓸함과
대사 하나에 동경과
대사 하나에 시와
대사 하나에 김아중, 김아중,
아중님, 나는 대사 하나에 아름다운 장면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간호사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는 상큼한 장면과, 명품, 진품, 반품 이런 유쾌한 대사와,
벌써 애기 어머니 같은 정민의 대사와, 가여운 스토커 장면과, 백화점,
중고차, 경찰서, 별, 마리아, 보랏빛 드레스,
마지막 콘서트 이런 애틋한 장면들을 떠올려봅니다.
장면들은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대사를 적을 시간도 없이.
아중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충무로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글이 올라온 게시판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삭제 버튼을 눌러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외우는 대사는
애타는 마음을 대신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방에도 봄이 오면
쌓여 있는 그리움을 걷어내듯이
내 이름자 적힌 글들도
자랑처럼 게시판 위에 무성할 게외다.
김아중 중독자의 하루
오늘 아침에도 마리아 알람 소리로 잠을 깬다.
욕실로 가면 나를 반기는 것은 팬틴 샴푸.
샴푸 할 땐 서서 한 손으로 벽을 짚어 본다.
옷은 다 젖지만 왠지 멋있다.
얼굴까지 그냥 샴푸로 씻는다.
치약은 아직 마땅한 것이 없어서 양치질은 웬만하면 거른다.
날이 추워지니까 피부가 건조해짐을 느낀다.
오휘를 사야 할까 보다.
아침은 어제저녁 먹다 남은 피자에땅 피자 한 조각.
차에 시동을 걸고 보니 기름이 아슬아슬하다.
회사 가는 방향 반대쪽에 있는 s-oil을 넣어준다.
그래서일까 50만 원짜리 내 중고차 잘 나간다.
지난여름 거금을 들여 앞바퀴 두 개를 한국 타이어로 바꿔 달고부터는
비가 와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난 비 오는 밤이면 빗 속을 마구 달리고 싶지만 좀 무섭다.
와이퍼가 작동 불량이기 때문이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단 뉴스 검색.
오늘 새로운 사진이나 뉴스가 없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새로운 사진은 없다.
이런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연해야 하지만 불안하다.
입맛이 없어서 점심도 대강 회사 식당에서 때웠다.
그래도 후식은 챙겨 먹는다. 쵸코퍼지.
단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후에 오랜만에 고교 동창 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 녀석 밀항의 전도현 팬이란다.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렸다.
난 오늘 내 친구를 버렸다.
퇴근 후에 집에 오니 저녁은 아침에도 먹은 피자에땅 피자.
심하게 말라있다.두 판을 하루에 다 먹기는 역시 무리다.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또 인터넷 서핑을 하는
나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 발자국이라도 밟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스케줄을 검색 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저항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아버지께서 고스톱을 하시려고 내 방에 들어오신다.
나는 고스톱은 12인치 화면으로 하시지 그러냐며
5년 된 내 노트북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고스톱도 데스크톱 24인치지 무슨 소리냐며,
너도 한때는 24인치로 하지 않았느냐며 우기신다.
나는 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따라 들어오신 어머니께 이끌려 노트북을 안고
안방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아버지.
난 아버지도 버렸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회사에서부터 계속 된 과도한 인터넷 검색 탓에 어깨도 결린다.
난 결국 인터넷 서핑 그만 하고 한 잔 하러
근처 술집을 향해 집을 나섰다.
도대체 '대한민국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눈이나 있는 것이냐며,
한국 영화계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며 혼자 개탄하면서
김치 한 접시를 안주 삼아 참이슬을 마셨다.
어디선가 '러브 샷?'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옆 자리를 치우던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김칫국물을 조금 흘렸다.
미안하다며 얼른 휴지를 들고 닦아 주기에
김칫국물을 쏟아 놓고 휴지로 되겠느냐며 뿌리치고 얼른 뛰쳐나왔다.
돈은 주고 가라는 다급한 아주머니의 말은 무시했다.
망설임이란 내게 없다.
난 술값 2,000원을 벌기 위해 나도 버렸다.
하지만, 이익은 영원하다.
깡 술을 마신 탓인가?
무작정 뛰다 보니 내가 진짜 어디에 와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하나도.
내 집이 보고 싶다.
급하게 술집에서 뛰어나오다 탁자에 부딪힌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아파 온다.
걷기 힘들만큼 힘에 겹다.
눈물이 앞을 가려 온다.
하지만, 그때 꿈을 꾸듯 다가오는 유난히도 밝은,
어두운 집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계신 아버지의 담뱃불.
다 털렸다는 한마디를 하시고는
아버지께서 나를 씁쓸히 올려다보신다.
난 아버지 추운데 이게 뭐예요, 속 옷 다 보이잖아요라며
옷깃을 여며드리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몰려와
아버지를 와락 안아 드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간 내게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너 왜 우니?
내 방에 누우니 바람결이 창을 흔든다.
창으로 들어오는 별빛들이 발가락 많이 아파하지 말라며
잘 자라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내일 아침도 마리아가 날 깨울 것이다.
욕실로 가면 나를 반기는 것은 팬틴 샴푸.
샴푸 할 땐 서서 한 손으로 벽을 짚어 본다.
옷은 다 젖지만 왠지 멋있다.
얼굴까지 그냥 샴푸로 씻는다.
치약은 아직 마땅한 것이 없어서 양치질은 웬만하면 거른다.
날이 추워지니까 피부가 건조해짐을 느낀다.
오휘를 사야 할까 보다.
아침은 어제저녁 먹다 남은 피자에땅 피자 한 조각.
차에 시동을 걸고 보니 기름이 아슬아슬하다.
회사 가는 방향 반대쪽에 있는 s-oil을 넣어준다.
그래서일까 50만 원짜리 내 중고차 잘 나간다.
지난여름 거금을 들여 앞바퀴 두 개를 한국 타이어로 바꿔 달고부터는
비가 와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난 비 오는 밤이면 빗 속을 마구 달리고 싶지만 좀 무섭다.
와이퍼가 작동 불량이기 때문이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단 뉴스 검색.
오늘 새로운 사진이나 뉴스가 없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새로운 사진은 없다.
이런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연해야 하지만 불안하다.
입맛이 없어서 점심도 대강 회사 식당에서 때웠다.
그래도 후식은 챙겨 먹는다. 쵸코퍼지.
단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후에 오랜만에 고교 동창 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 녀석 밀항의 전도현 팬이란다.
휴대폰 배터리를 빼버렸다.
난 오늘 내 친구를 버렸다.
퇴근 후에 집에 오니 저녁은 아침에도 먹은 피자에땅 피자.
심하게 말라있다.두 판을 하루에 다 먹기는 역시 무리다.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또 인터넷 서핑을 하는
나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 발자국이라도 밟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스케줄을 검색 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저항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아버지께서 고스톱을 하시려고 내 방에 들어오신다.
나는 고스톱은 12인치 화면으로 하시지 그러냐며
5년 된 내 노트북을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고스톱도 데스크톱 24인치지 무슨 소리냐며,
너도 한때는 24인치로 하지 않았느냐며 우기신다.
나는 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따라 들어오신 어머니께 이끌려 노트북을 안고
안방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아버지.
난 아버지도 버렸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회사에서부터 계속 된 과도한 인터넷 검색 탓에 어깨도 결린다.
난 결국 인터넷 서핑 그만 하고 한 잔 하러
근처 술집을 향해 집을 나섰다.
도대체 '대한민국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눈이나 있는 것이냐며,
한국 영화계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며 혼자 개탄하면서
김치 한 접시를 안주 삼아 참이슬을 마셨다.
어디선가 '러브 샷?'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옆 자리를 치우던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김칫국물을 조금 흘렸다.
미안하다며 얼른 휴지를 들고 닦아 주기에
김칫국물을 쏟아 놓고 휴지로 되겠느냐며 뿌리치고 얼른 뛰쳐나왔다.
돈은 주고 가라는 다급한 아주머니의 말은 무시했다.
망설임이란 내게 없다.
난 술값 2,000원을 벌기 위해 나도 버렸다.
하지만, 이익은 영원하다.
깡 술을 마신 탓인가?
무작정 뛰다 보니 내가 진짜 어디에 와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하나도.
내 집이 보고 싶다.
급하게 술집에서 뛰어나오다 탁자에 부딪힌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아파 온다.
걷기 힘들만큼 힘에 겹다.
눈물이 앞을 가려 온다.
하지만, 그때 꿈을 꾸듯 다가오는 유난히도 밝은,
어두운 집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계신 아버지의 담뱃불.
다 털렸다는 한마디를 하시고는
아버지께서 나를 씁쓸히 올려다보신다.
난 아버지 추운데 이게 뭐예요, 속 옷 다 보이잖아요라며
옷깃을 여며드리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몰려와
아버지를 와락 안아 드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간 내게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너 왜 우니?
내 방에 누우니 바람결이 창을 흔든다.
창으로 들어오는 별빛들이 발가락 많이 아파하지 말라며
잘 자라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내일 아침도 마리아가 날 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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